1972년 전후, 범냇골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백성(白城)이라고 이름 붙인 동네는 사방으로 집과 집 사이, 공간의 단락이 한치도 없이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커다란 철대문이 유일한 통로이다. 상가 건물과 가게, 공장의 담벼락, 인가들로 둘러싸인 독특한 동네인 백성 안에는 별도의 여러 공장과 집들이 들어 서 있다.
윌리암 골딩의 <파리대왕>이 핵전쟁 상황 속에서 무인도(島) 산호섬에서 벌어진 인간 본성의 극한적인 충돌을 소년들의 활극을 통해 그렸다면, <형, 우리 같이 놀자> (별 제목 : 부산 범냇골 1972)는 세계 냉전과 국내의 냉혹한 유신 시대의 전조와 억압 상황 하에서, 백성이라는 유인도(都)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성격의 인간 충돌과 극복, 가정 중심의 행복, 가정 불화로 인한 불행, 소년들의 세상을 향한 몸부림 등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우중충한 폐허처럼 변해버린 병원 폐건물을 가운데 두고, '나와 너'로 나뉘어 대립하는 십대 아이들. 이들의 두 진영은 세상살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대립과 절충, 갈등과 오해, 이해와 대화, 단절과 지속 등 인간사의 제반 양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자인 당신의 삶은 그렇게 가볍거나, 구석에서 일어났다가 무명소실하는 그런 무가치한 자산이 아니다. 당신은 책 속의 '나'와 같은 인물이다. 세상 속에 내던져진 상태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거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모습 곧 자신감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게 된다. 유리어항처럼 깨지기 쉬운던 자아, 생각이 많고 내성적인 십대 소년들이 바라보며 겪는 세상이 고스란히 책에서 펼쳐진다. 십대의 나이에 또래 끼리 놀았던 추억이 있는 자와 등교와 귀가의 기억밖에 없는 자는 인생의 깊이와 넓이가 달라진다.
책을 덮은 후, 당신은 당신의 삶에 더욱 주도적으로 뛰어들 것이다.
부산 태생
부산진고등학교
울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하이닉스 근무
현, 마리아 포지셔닝 운동 본부
저서, <멀리서 바라보는 마리아> <가까이서 본 마리아> <꿈의 장벽 그리고 첫 균열>
<한 지성인과 목사의 통화> <카야 박사의 저택에서의 만찬> 외